2012년 1월 11일 수요일


2월호에 실릴 해외원고를 검토 중이다. 여기에 KFC와 피자헛, 타코벨 브랜드의 프랜차이즈 기업 YUM(얌!)의 CEO 데이비드 노박(David Novak)의 칼럼이 있다. 그는 여느 성공한 사람들의 전형적인 기승전결 스토리를 가지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기(起) 부분에 해당하는 과거 직업 중 하나가 백과사전 외판원, 어렸을 때 웅진에서 나온 20세기 위인들 즐겨 봤는데 조금 과장해서 거기서 젊을 때 백과사전 안 팔아 본 해외 위인을 못 봤다. 갑자기 미래에 회자될 과거형 현재 직업은 뭐가 될지 궁금하다. 아직까지 대세는 신문배달인거 같음. 그 백과사전 외판원 중 하나가 호텔 접수원에 광고회사 직원을 거쳐 피자헛에 들어가서는 46세에 얌 CEO가 됐다. 노박이 강조하는 건 딱 하나, 분위기. 그걸 이번 해외칼럼에서 좀 더 아카데믹하게 풀어보자면 ‘살아있는 문화’다. 실제로 기술한 문장은 ‘Make Your Culture Come Alive’. 그는 YUM에 와서 무엇을 팔지, 어떻게 팔지에 대해선 논의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는지, 어떤 부분을 자랑스러워 하는지 문화에 대해서만 의견을 나눴다.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건 이것 저것 계획되고 계산된 수치(Numbers)가 아니라 사람들의 어울림(People do)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직원들의 활기를 기업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을 수 있었던 계기는 광고회사에 다닐 때였다. 당뇨병이 있던 노박의 아내가 2.1kg의 딸을 조산한 후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 절박한 상황에 당시 노박의 상사가 직원들에게 이렇게 선언했다고 한다. “노박이 간호에 전념할 수 있도록 노박에게 전화하는 사람은 누구든 해고!” 노박이 직원이 가족문제로 다급한 상황에 처하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하고 장례식, 병원 등을 장거리로 가야 할 경우 비행기를 포함한 최상의 지원인력을 제공하는 등 HR에 공들이는 이유다. 이래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부모따라 가고(Parents are patterns), 물고기는 대가리부터 썩는다(The fish always stinks from the head downwards)는 아름다운 속담이 줄줄 있지. 노박은 그 반대되는 상황에서도 교훈을 얻었다. 그가 호텔 야간 접수원으로 근무할 때 밤늦게 온 인기 팝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그 어떤 칭찬도 받지 못했던 일화를 소개하며 유능한 직원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었어야 한다고 주장함. 단단히 속상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잘됐다. 현재 얌의 직원들은 일을 잘 하면 돈이 가득 든 저금통을 선물로 받거나 고무치킨 인형, 이름을 새겨 넣은 대형 은제 피자팬, 조리법이 적힌 주방용 거울 등을 받는다. 인형 선물 줄 거면 차라리 생필품을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는 주의라서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이슈되는 거 위주로 홍보팀에서 뿌린 거겠지 싶어서, 기사도 아니고 그냥 넘어간다. 노박이 참 정성스런 사람임엔 틀림없다. 워렌 버핏은 그에 대해 "프로 풋볼 선수를 스카우트하듯 최고경영자(CEO)를 뽑는다면 나는 데이비드 노박에게 버크셔 해서웨이의 경영을 맡기고 싶다"고 말했다. 나머지 인생을 닭튀김에 설탕물이나 팔며 보내겠습니까? 라고 한번 설득해보지.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예술가의 파괴적인 삶


50대에 마약혐의로 법정에 선 프랑수아즈 사강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두 번의 결혼과 이혼, 도박, 자동차 경주, 약물중독 등으로 사강스캔들이란 말을 만들어낸 그의 인생을 사람들은 파괴적이라 불렀다. 꼭 이런 범법행위가 아니라도 닳아 없어질 때까지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것, 그게 파괴라면 무언가를 창조하고자 하는 이들은 파괴적인 삶을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수세기를 황홀케 하는 마법 같은 예술은 세상에 던져진 자기 자신을 미치기 직전까지 탐닉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알 수 있다. 생명을 살리는 꽃들이 다 가파른 절벽에 피어있듯, 파괴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가치 있다.

2012년 1월 4일 수요일

사회적 유전자

우리는 유전자에 집착한다. 외모에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배우자의 미모에 집착하고, 지성에 컴플렉스가 있는 사람은 배우자의 학력에 집착한다. 이 DNA의 배열에서 오는 물리적 유전자 외에도 우리에겐 환경으로부터 물려받는 사회적 유전자가 있다. 인간의 형질에 절대적으로 관여해왔던 게 물리적 유전자다. 염색체 하나로 눈 한번을 평범하게 깜박거리지 못하고, 혀 한번을 앞니에 대지 못해서 평생을 부정확한 발음으로 살아야 하는 게 얘네들이 세포 하나 가지고 장난친 결과다. 그런데 요즘엔 이보다 더한 게 사회적 유전자란 생각이 든다. 사회적 유전자는 인생에 관여한다. 가치있는 삶의 우선순위를 논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논할 만한 삶을 빼앗을 만큼 이 시대의 사회적 유전자는 치명적이다. 이게 한번 뒤틀리고 분열될 때마다 젊은이들의 숨이 툭툭 끊어진다. 가정은 사회적 DNA를 배열하고, 학교는 보존하는 곳이다. 조작이 있어선 안 된다. 인류의 유전자에 대한 집착이 보다 심화돼도 좋은 곳이 가정과 학교일텐데, 컴플렉스가 없는 것 같다.

2012년 1월 2일 월요일

Definition of youth

When I am in early twenties, I thought youth was like spending awake all nights and believed the future was going to return the favor as much as i expected. I am now in late twenties, that's sort of true and still going on. There's nothing wrong and right, only like and less like. I do not care about dislikes.

수서의 마인드맵

우리 회사는 수서에 있다. 수서에는 산이 하나 있는데 산 이름은 모른다(이 글을 쓸데만 해도 몰랐는데 지금은 대모산인걸 안다).  가끔, 아니 사실은 종종 내가 지리적인 망언을 쏟아낼 때마다 사람들의 표정은 대부분 비슷하게 변한다. 마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듣고 멈칫한 사람들처럼 혼란스러워한다. 또박또박 말하는데 내용이 다 엉터리라 순간 말리는 거다. 그래도 오른쪽과 왼쪽을 헷갈리는 애들보단 약과라고 생각한다. 웬만해선 산 이야기를 꺼내고 싶진 않은데 회사를 이야기하는 데 산을 빼놓을 수는 없었다. 16층에 있는 사무실은 전망이 좋다. 비행기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 구름밖에 없어도 예뻐서 눈을 뗄 수 없는 것처럼 사무실에서 보이는 것도 산 밖에 없는데 자꾸 보게 된다. 산봉우리에 올라가지 않아도 난 언제나 야호를 외치는 수준(높이)에 있다. 실제로 해 본 적은 없다. 

회사를 마인드맵 해서 첫 번째로 나오는 게 산이라면, 두 번째는 장애인이다. 수서는 큰 오피스 빌딩과 아파트 단지가 어설프게 어우러져 있는데, 그 아파트 단지 중 하나가 장애인 임대 아파트다. 어렸을 때 주말부부였던 부모님을 대신해 나와 동생을 자주 맡아주셨던 우리 이모할머니도 장애인이다. 할머니는 사고로 두발로 걷는 게 힘들어졌다. 거의 앉아서 생활했기 때문에 당시 어린 내가 품에 안겨있기엔 서있는 할머니보다 앉아 있는 할머니가 더 좋았다. 초등학교 때 또래친구들이 꺼리는 장애인 친구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걔네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어머니가 꼭 국을 두 그릇씩 주셨던 기억이 난다. 키가 크니까 밥도 많이 먹어야 한다며. 중학생이 되고 나서 나는 또 한 명의 장애인 친구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친구는 입 근육이 살짝 마비돼서 침을 많이 흘렸다. 더럽다고 피하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침이 자꾸 떨어지니까 좀 닦으라고 한 거 같다.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상처일 수도 있는데, 둔해도 한참 둔했다. 상대방의 다른 점을 포용하는 성숙한 인간이 아니라 애초에 뭐가 다른 것인지를 잘 몰랐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는 조금 다르더라. 한번은 봉사활동으로 장애인 복지시설에서 갔다가 몇 십 명의 장애인을 한꺼번에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뭐랄까. 얘는 나보다 머리가 길고, 쟤는 나보다 키가 작은 그런 수준의 차이가 아니었다. 중증 지체장애인애인 동에 배치돼서 더 유별나게 느꼈을 수도 있다. 성인 남자들이 발가벗고 돌아다녔다. 너무너무 무서웠다.
구경을 했던 거 같다. 난 처음으로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보게 됐다. 그들은 나를 키워준 할머니가 아니었고, 방과후 손을 잡고 집에 같이 가는 친구도 아니었다. 그때 나는 사람을 차별하는 것에 대해 알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 안에서 누구를 차별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장애인을 의식했다. 대학생 사회복지활동으로 자폐 아동들의 방과후 수업을 맡으면서  좀 나아졌는데, 그래도 그냥 그랬다. 그들은 여전히 나와 다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7년쯤 지났나... 수서에 처음 출근하던 날, 지하철 역에서부터 사무실까지 전동 휠체어를 네 개나 봤다. 고등학교 때 느꼈던 그 미성숙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얼마나 오랜만인지를 세어보다가 ‘이건 좀 이상한데’ 싶었다. 성인이 돼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두 평범했다. 불편한 데라고는 엊그제 술을 많이 먹고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야근으로 살이 쪄서 혈압이 높아졌거나 하는 자기 관리를 못한 정도였다. 선천적으로 건강하게 태어난 사람들뿐이었다. 여기 수서만 와도 지나가는 사람이 열에 셋이 장애인인데 말이다. 이 곳의 엘리베이터는 병원 엘리베이터만큼이나 휠체어가 자주 타고 내린다. 은행 ATM 옆에는 도움이 필요한 손님들의 입출금을 대신해 주기 위해 직원이 대기하고 있다. 우체국에는 귀가 잘 안 들리는 분들과 대화하는 진짜 목소리 큰 직원이 있는데, 똑같은 얘기를 녹음 파일처럼 열 번이면 열 번 다 친절하게 말한다. 늘 내게 말을 거는 ‘다 큰 여자애’도 있다. 걔는 나를 처음 봤을 때부터 반말이었다. 그리고 언제나 내일 소풍을 간다고 한다. 나이는 나랑 비슷한 거 같은데 초등학교 입학식 때나 입는 약간 치장용 원피스 같은 것만 입는다. 그리고 내 우편물에 적힌 주소를 자꾸 소리 내서 읽으려고 한다. 난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슨 말인지 바로 못 알아 들어서 그냥 가만히 쳐다본다. 무엇보다 걔가 반말을 하니까 나도 반말을 해주고 싶은데 혹시 나이가 많으면 어떡하나 싶기도 하고, 한번은 ‘나 여기에 우표를 붙일 거야’라고 세 번이나 얘기하길래 알아듣고 ‘응’이라고 대답했는데 씹혔다. 별로 내 대답이 중요한 것은 아녔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전엔 로비에 있는 유리문을 잡고있다 높으려는 순간 뒤를 확인하는데 
아저씨 한 분이 뚝거리는 걸음으로 문을 이어받았다. 내 걸음걸이와 내가 생각하는 문을 잡는 시간을 여기서 다시 새롭게 세팅하고 있다. 어제는 엘리베이터 문이 막 열리는 걸 확인하고 아이폰을 보면서 걸어 들어가는데 다리를 저는 학생 두 명이 아직 닫힐 기미도 안 보이는 엘리베이터에 서둘러 달려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렇게 해야 지체 없이 매끈하게 이어지는 것은 맞다. 그런데 그 맞는 게 다 몸이 편한 사람들 기준이다. 다리를 절지 않을 때, 휠체어를 타지 않을 때를 기준으로 설계됐다. 난 두 다리 멀쩡한데도 얼마나 자주 문에 끼이는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다. 스마트폰 생기면서 편하게 사는 법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아무리 편하고 효율적이어도 가끔은 모바일뱅킹 대신 직접 은행에 가서 돈을 출금하고 싶고, 미스터피자 모바일 주문보다 매장에 가서 직접 샐러드 바를 이용하고 싶고, 카톡으로 얘기해도 되는데 만나고 싶고, 조카 사진 받아보면 되는데 품에 안고 얼굴을 부비고 싶다. 그런거다. 다음에는 우체국 가서 다 큰 여자애가 또 말 걸면 나도 반말로 물어봐야지. ‘내일은 소풍 어디로 가?’

쓸쓸함의 정의

LONDON. 내 인생에 이 도시가 들어와서 얼마나 행운인지. 이 도시에 내 인생은 수천만빌리언 중 하나지만 그 수많은 영혼들 사이에 낄수 있는 것조차 얼마나 행운인지. 사람은 그냥 보이는대로가 아니다. 사람이 가진 에너지는 평생을 걸어도 다 만져볼 수 없는 이 엄청난 지구를 매일 바꾼다. 멸망론을 믿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대단한 사람들이 한꺼번에 우주에서 없어진다는 게 내겐 너무나 어려운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런 별난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모여있는 곳이 거기였다.

런던에 간건 스물세살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달 후에 히드로를 밟았다. 사랑스러운 동네 메이다베일을 지나 아침마다 신문읽는 아저씨가 있던 생뽈을 지나 학교가는 길은 정말 눈부셨다. 햇빛이 그대로 들어오는 이층칸만 앉은건 참 잘한 일이었다. 쏟아지는 졸음에 괴로웠던 기분도 생생한데 그 기억이 추억이 되면서 아름답게 걸러졌다. 얼마 되지 않은 내 인생에 이토록 행복했던 그순간 그곳에서 난 아이러닉하게도 쓸쓸함이 뭔지 깨달았다.

하루일과를 마치고 집에 들어갈 때, 다섯 명이 사는 집에 불켜진 방이 하나도 없을 때, 평소 그 다섯 명이 친구 한명씩만 데려와도 열명이 넘게 북적거리는 집이, 다섯 개 방에서 각기 다른 음악소리가 새어나오던 그 복도가 조용할 때, 그 복도 끝에 붙은 내 방으로 들어갔는데 운치있기로 소문난 달빛이 어찌나 가득한지 스산하기 짝이 없을 때, 스탠드 하나 킬 힘도 없어 진짜 불편한 내 작고 딱딱한 침대에 누워서 숨만 고르고 있어야 할때, 그렇게 한참이 지나도 바깥에서 아무런 인기척이 없을 때, 그런 일이 며칠이나 반복될 때, 그때 알았다. 이런게 쓸쓸함이다.

쓸쓸함은 예쁜 풍경 속에 떨어지는 낙옆같은 게 아니었다. 쓸쓸함은 그런 생경스런 곳에 있지 않았다. 평소 수천번도 넘게 걷고 보고 앉아본 곳이 바뀐, 그 달라진 곳에 있다. 정든 공간이 바뀌는 그 순간에 있다. 그 기분이 너무 지독했다. 그런데 이게 중독이다. 쓸쓸함은 아주 짧다. 그리고 그 쓸쓸했던 기억은 행복하게 오래 간다. 

재미의 정의



하루키가 말했다. 재미라는 것은 표층적인 논리를, 안이한 판단을, 그 상황에서 조용히 배제해나가는 것이라고. 그래서 우리네 사는 세상사의 대부분에 결론이 없어도,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